21년 8월 15일
21년 8월 15일. 그녀를 처음 만난 날.
일주일? 2주 가까이 연락만 하다가 그녀를 처음 만났다.
이미 연락 만으로도 서로가 얘기가 잘 통하고, 호감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마지막 관문(실제 느낌, 외모)만 통과한다면 굳이 잴 필요는 없었다.
맥주 한 캔도 겨우 마시던 그녀는, 처음 날 만난 날 둘이서 청하를 6병 넘게 마셨다.
우리는 역시 얘기가 잘 통했고, 심지어 우리는 전화번호 뒷자리가 거꾸로 하면 서로 똑같았다.
그녀의 뒷번호가 1234 라면, 나는 4321.
사소한 거 하나하나 의미부여를 하며 우리는 운명이라 예감했다.
어렸을 때, 고등학생 시기. 내가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사람도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을 때, 하지만 바보같이 고백도 못하고 지켜만 보다 놓쳤을 때 나는 다짐했다. 좋아하면 후회 없이 고백이라도 해보자고.
그리고 항상 기도 했다.
좋은 사람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혜안을 주시고,
그 사람을 발견하면 놓치지 않을 용기를 달라고.
나는 그녀가 항상 기도해왔던 좋은 사람이라는 것과, 오늘이 그 용기를 내볼 날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를 처음 만난 날 정식으로 연인이 되어보자 했고, 두 번의 거절 끝에 세 번째 물음 끝에 그녀는 내 마음을 받아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만난 날이 광복절이면 매년 기억하기 좋고, 기념하기 좋지 않겠냐" 면서 설득했고, 조심성 많던 그녀는 그 설득에 잘 넘어가주었다.
우리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3년 9월 23일
사실 그녀를 만나기 전, 나는 비혼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를 만났고, 그렇게 2년을 만나며, 우리는 결혼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아이를 너무 좋아하고, 현명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더 빨리 결혼하고 싶어했지만, 난 경제적인 상황들, 앞으로 나날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들로 인해 결혼을 망설이고 있었다. 물론, 그녀와 결혼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생각하는 결혼 준비에 대한 기준.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아직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거 같았다. 아니, 미치지 못했다.
언제나 나는 결혼 하고 싶어하는 그녀의 말을 이런저런 말로 돌려왔던 거 같다.
당시 나는 가진 것이 너무 없어 결혼 준비를 과연 잘 해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막막함이 있었다.
항상 생각했던 건, 이렇게 살아온 내 삶이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생각, 젊을 때 그냥 돈 열심히 모으며 더 착실하게 지낼 걸 하는 생각 같은 후회 뿐인 생각들이었다. (그전까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고, 내 삶은 나름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다 어느 추운 겨울날, 그녀의 어머니(현 장모님)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어머니께서 하셨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욕심부리고 불평하기 보다는, 현재 가진 것을 생각해보며 감사하자" 는 말씀이 내 마음을 바꿔놓았다.
그렇게 그 날, 나는 그녀에게 프러포즈 했고, 우리는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아무튼, 내 걱정과는 달리 결혼 준비는 양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 둘의 힘으로 잘 준비했고, 무사히 잘 마쳤다.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 삶은 안정되어 1년 동안 많은 돈을 모았다.
그래서 지금도 주변에 얘기하는 건, 결혼 준비라는 건 끝이 없다고, 하루 빨리 결혼하는 게 좋다고, 좋은 사람을 만나면 결혼하고나서 삶이 더 안정된다고 말한다.
24년 8월 - 부모가 될 준비 시작
결혼하고 그렇게 1년을 또 재밌게 살았다. 해외 여행도 다니고, 국내 여행도 많이 다니고, 금요일 저녁엔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재밌게, 또 가끔은 서로 투닥대기도 하면서.
그러다 그녀가 이제는 아이를 가져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역시나 나는 결혼 때처럼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고, 육아는 수십년 동안 끝이 없는 퀘스트를 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당장 시작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곧 (10월) 퇴사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거는 서로 얘기를 충분히 나누고 결정했다.) 앞으로의 경제적인 부분도 걱정도 됐다.
하지만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그녀는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시기가 끝나갈까봐, 확률이 낮아질까봐 불안해 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나만 생각할 수는 없었고, 나도 그녀도 아이를 좋아하기에 우리가 한 살이라도 건강하고 힘이 있을 때 낳아 기르자고 했다.
24년 8월, 오사카로 여름 휴가를 다녀온 뒤부터 우리는 몸을 가꿔 예비 부모가 될 준비를 했다.
가장 중요한 건 금주 할 것, 운동을 자주 할 것, 엽산 등 영양제를 꾸준히 먹을 것. 이었다.
24년 9월 ~ 10월 - 도전과 실패
24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아이를 갖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말은 아이를 갖자고 해놓고, 마음의 준비는 제대로 안 된 거 같았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곧 (10월부터) 퇴사를 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삶도 더 열심히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우선 순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임신에 대해 너무 몰랐다.
나는 그냥 임신이 한 번에 되는 줄 알았다. 너무 무지했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서운함이 가득했었고, 결국 울면서 서운함을 털어놨다.
24년 10월. 그때는 나는 더 노력했고, 우리는 여러 정보들을 찾아보고 공부했다.
그녀는 배란일 테스트기를 구입했고,
우리는 보건소에서 진행하는 산전검사를 받았고, 그 시간들은 내 자신을,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라 더 좋았다.
(임신 사전건강관리 지원사업 관련 해서는 추후 따로 글을 작성해보겠다.)
산부인과라는 곳도 태어나서 처음 가봤다.
여성 의료진이 가득하고, 여성분들이 가득한 곳에서 올챙이 검사를 받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너무너무 민망했다.
아무튼, 9월과 10월에는 임신은 실패했고, 나는 은근한 실망감이 들었다.
나도 이제 아기천사를 많이 기다리나보다.
24년 11월
산부인과에서는 아내의 호르몬에 맞춰 숙제 날짜(!)를 지정해줬고, 우리는 숙제를 열심히 했다.
숙제 첫 날, 산부인과를 들렸다가 날씨가 좋아서 인천대공원으로 나들이를 갔다.
그러다 발견한 800년 된 은행나무.
만약 우리가 아기가 생긴다면, 태명을 '은행이'라 짓자며 얘기를 나눴다.
우리는 그동안 꽤 오래 머무는 가을 덕에 에버랜드, 제주도 여행 등 가을을 제대로 만끽했다.
(우리는 제주도를 돌아다니면서 돌하르방이 보일 때마다 코를 만지고 다녔다.)
그리고 며칠 후, 24년 11월 17일 일요일.
교회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는 막대기 하나를 내밀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테스트기에 있는 선명한 두 줄! 은땡이 (아내가 태명은 쌍자음이 있는 게 좋다고 해서 바꿨다.) 가 아내 뱃속에 생겨나고 있다!
이걸 처음 봤을 때 기분이 묘했다. 그동안의 노력이 빛을 봐서 기쁘기도 했지만, 앞으로 고생할 아내를 생각하니 안쓰러운 마음도 같이 들어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우리 둘이서 두 달 동안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지만 안 생겼는데, 병원 의사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한 번에 턱 성공하는 것도 너무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뒤늦게 안 사실인데, 배란일 테스트기 사용할 때 '피크' 인 날에 숙제를 하는 게 아니라, 피크를 찍은 다음날부터 3일 동안 숙제를 하는 게 임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었다. (둘째 때는 잊지 않고...!)
아무튼, 우리는 이 선명한 두 줄을 보면서 앞으로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위해, 몸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할 것을 느꼈고 도서관에가서 책을 빌려서 사이좋게 읽었다.
사회복지과 전공이라 수업 때 관련 내용을 배우기도 했고, 요즘엔 유튜브나 여러 가지 정보가 많아서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해 잘 안 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닥치니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이 글이 나처럼 초보 아빠, 초보 부모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여기다 때가 될 때 육아 일기를 적어봐야 겠다.
와이프가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래서 입이 근질근질 한데, 여기에 쓰는 걸로 답답함을 해소해야 겠다.
앞으로 아이가 건강히 잘 자라기를 바라면서, 아내도 몸 건강히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 앞으로 행복한 셋이 될 새로운 나의 가족을 기대하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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